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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오월광주... 쿠데타와 학살 그리고 저항

    기사승인 2018.05.18  10: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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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광주민중항쟁 38돌- 오월광주 정의를 세우다... 1만여 명,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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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 광주!
    1980년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뒤 총검으로 완전 무장한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내로 시가행진하며 진출하고 있다. '피의 광주'를 예고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12.12 군사 반란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총검과 곤봉으로 완전 무장한 특전사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내로 시가행진하며 진출했다.

    민주화의 봄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하며 '피의 광주'를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5월 18일(일요일, 맑음) 오전 10시 전남대 앞. "계엄 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고 외치는 학생들과 공수부대의 첫 대치가 벌어졌다.

    5월 19일(월요일, 오후부터 비) 새벽 3시 공수부대 11여단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하는 등 계엄군이 광주에 증파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금남로, 수만명의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대치했다.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긴 침묵을 깨고 누군가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쳤다. 동시에 '탕, 탕탕탕...' 공수부대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피의 광주가 시작된 것이다.

    ▲ 1980년 5월 18일 민주화 요구 시위대를 향한 계엄군의 유혈 진압이 시작되면서 공수부대원이 대학생을 곤봉으로 무차별 내리치며 공격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 데일리중앙

    민주화의 봄. 쿠데타와 학살. 그리고 저항···. 한국의 80년은 그렇게 시작됐고 어느새 '오월광주'는 한국 민주화의 정신적 고향이 되어 있었다.

    핏빛 진달래와 함께 찾아온 반도의 5월은 언제나 그렇게 80년대 청춘들에게 원죄의 무게를 더해줬고 눈물과 분노, 새로운 결의와 다짐 그리고 투쟁이 늘 함께했다.

    돌이켜보면 84년 이후 전국의 대학가가 들끓기 시작하고 캠퍼스가 온통 몸살을 앓으면서 드디어 '광주'가 신열을 토해내며 그 나신을 드러냈다. 투쟁의 서막을 알리는 대학가의 해오름식은 이후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캠퍼스는 단 하루도 영일이 없었다.

    그렇게 광주는 그때 청춘들에겐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으며 스스로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멍에였다. 어느 누구도 광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직 광주만이 그들의 영감과 사상적 전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듯 민주화 여정은 거칠었고 힘겨웠으며 이따금 몸져 누웠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과 5월.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고 광주 망월묘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방송3사 합동 실황 중계방송이 열렸다.

    ▲ 2004년 5월 18일 광주 망월동 5.18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24돌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이 땅의 참민주를 위해 먼저 가신 임들을 위로했다.
    ⓒ 데일리중앙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에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정부행사로 승격됐다. 이후 5.18 공식 기념식 본 행사 때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2004년 5월 18일 광주 망월동 5.18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5.18 24돌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불렀다. 대통령은 이 땅의 참민주를 위해 먼저 가신 임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듬해인 2009년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본 행사에서 내쳤다. 역사와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이후 5.18을 앞두고 해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둘러싸고 국론이 둘로 갈라져 논란이 격화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이유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국론분열'을 언급했다. 하지만 1980년 이후 28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생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오월광주의 상징적인 노래라는 것은 국민의 상식이다.

    다행히 촛불시민혁명으로 지난해 정권을 교체했고 그해 광주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 등 1만여 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8일 5.18광주항쟁 37돌 기념식에서 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읽은 뒤 눈물을 흘리는 유족을 안아주며 함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청와대)
    ⓒ 데일리중앙

    '5.18정신 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 주제로 열린 37돌 5.18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추모했다.

    대통령은 이어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받았지만 서슬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다"면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다"고 선언했다.

    광주항쟁 38돌을 맞은 올해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18일 오전 10시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유족과 시민, 학생 등 1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국가보훈처 주최로 '오월광주, 정의를 세우다!' 주제로 열렸다.

    참석자들은 민주·인권·평화의 숭고한 5.18정신을 되새기고 희생된 넋을 위로했다.

    특히 이날 추모공연에는 5.18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시민참여 독려를 위해 가두방송을 진행했던 전옥주(본명 전춘심)씨가 실제 나와 당시 상황을 재연함으로써 현장감을 더했다.

    올해 기념식에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이창현(당시 8세)씨와 38년 간 아들을 찾아다닌 아버지의 애끓는 사연을 씨네라마 형식으로 전달해 5.18민주화운동의 과정과 의미를 재조명했다.

    이날 5.18 기념식에는 의미있는 외국인 참석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5.18의 진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고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의 부인 마사 헌틀리, 고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바라 피터슨과 2018광주인권상 수상자인 난다나 마나퉁가 신부 등이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는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로 5.18 당시 민주화운동 현장을 영상에 담에 5.18을 전세계에 알린 사람이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저작권자 © 데일리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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