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새정부는 신기원을 열고 촛불혁명 완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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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새정부는 신기원을 열고 촛불혁명 완수해야"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7.01.16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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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YS, DJ를 훌쩍 뛰어넘어야 한다... "야3당 공동행동 당장 시작하자!" 제안
"다음 정부는 'Year One'(새로운 헌정 1년)을 열고 촛불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정부는 민주연합정부일 수밖에 없다. 지난 87년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가 연합했다면 이들이 세웠을 정부가 연합정부다."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다음 정부는 'Year One'(새로운 헌정 1년)을 열고 촛불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정부는 민주연합정부일 수밖에 없다. 지난 87년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가 연합했다면 이들이 세웠을 정부가 연합정부다."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는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반격인 제2의 12.12는 완전히 제압됐다며 새 정부는 신기원을 열고 촛불혁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연합정부로 나가기 위해 야3당(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당장 작은 일부터 공동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6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가 펴낸 <이슈 페이퍼> 제161호에 실린 '민주연합정부-촛불혁명을 완수하는 길'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먼저 김 교수는 지난해 10월 26일 JTBC의 2차 태블릿 폭로가 있었던 날을 '제2의 10.26'으로 규정했다. 그날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37년 전인 1979년 10월 26일에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쏜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10.26하면 바로 거의 자동으로 떠오르는 게 '12.12 사태'다. 1979년 10.26 직후 혼란한 틈을 타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탱크를 앞세워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하극상으로 권력을 강탈했던 군사 쿠데타다.

김 교수는 "따라서 우선 제2의 12.12를 모의하는 자들, 그럴 가능성이 있는 자들과 그룹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중요했다"며 "이들의 동향을 낱낱이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손안에 넣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12.12와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 물론 시대가 변해 당시와 같은 군사 쿠데타는 일어나기 어렵게 됐지만 그와 유사한 정치공작적 역습, 반격은 얼마든지 가능한것이 현실.

김기춘·최병렬·김용갑·김용환 등의 '친박 원로7인회'와 서청원·최경환 등의 새누리당 '친박9인회' 등이 그런 모의를 벌일 수 있는 대상자들이다. 이들의 면면은 70년대 유신 시절 김지하가 그토록 통쾌하게 풍자했던 '5적'과 너무나 닮아 있다.

검찰, 경찰, 군의 공안통들, 재벌과 그 끄나풀들, 그에 빌붙어 사는 경제관료들, 고위 공무원들, 국회의원 장차관들... 그 중 일부는 박정희 유신 시대의 장본인들인 바로 '유신 본당'이다.

최순실이란 이름을 캐면 캘수록 그 뿌리, 본체가 바로 정확히 유신 권력의 핵심에 닿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최태민, 이 요승의 술수는 결국 박정희 유신체제를 호위·선전하고 앞장서 궂은 일을 처리해주는 사이비 기독교 유신행동부대, 청년 유신행동부대를 만들어 박정희에게 갖다 바친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름하여 '구국선교회'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이 그것이다.

'친박 원로7인회'의 대표 격인 김기춘은 자신의 입신 출세의 뿌리를 바로 유신체제의 탄생 순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유신과 김기춘은 정치적 출생일이 정확히 같다. 1972년 당시 유신 헌법 기안 임무가 신직수 법무장관에게 떨어졌고, 이 작업을 위해 신직수가 중용했던 젊은 검사가 바로 김기춘이다.

대통령에게 히틀러 같은 절대적 비상대권을 주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세계 헌정사상 희대의 괴물을 고안하는 데 김기춘은 그 영리하다는 머리를 바쳤다. 김기춘은 이후 청와대로 들어가 박정희에게 '똘똘이' 소리를 들어가며 독재자의 사랑을 넘치도록 듬뿍 받았다고 전해진다.

김 교수는 "김기춘과 그가 애호했던 우병우 라인의 뿌리는 1972년 만들어진 유신 독재체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막후의 알부자'라는 우병우의 장인 그리고 그 장모가 이미 유신시절부터 최태민과 가까운 사이로 밝혀졌다.

최태민과 김기춘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박정희-김기춘-박근혜-최태민은 이렇게 뿌리에서부터 얽혀 있다. 그 뿌리에서 최순실이 나오고 우병우도 나온 것이다. 이들들의 이념적 탯줄은 유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의를 유린하고 나라 살림을 말아 먹는 수법 또한 대를 이어 전승됐다.

이들은 기기묘묘 화려하기까지 한 국정농단·세금빼먹기·재벌과 짜고치기의 신종 수법들도 선보였다. 그 수법이 이제는 부정입학에까지 가지를 쳤던 게 밝혀지면서 어린 초등생들까지 최순실, 정유라 이름을 알고 주목하게 되는 희한한 지경에 이르게 됐다.

지난해 가을 막 나가는 대학 기업화에 제동을 걸었던 이대생들의 신선했던 분투가 정유라 부정입학 건과 연결되면서 전국 대학생들의 결집과 진출로 증폭되기도 했다.

그 순간 다른 한 구석에서는 '친박9인회'가 맹활약 중이었다고 한다. 서청원·최경환·조원진·윤상현·홍문종·이장우·원유철·김진태·정갑윤 등. 여기서 모인 결론은 이정현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1차 '대국민 담화' 이후 결집해 거의 매일 모임을 가지면서 '반격'을 모의해왔다고 한다. 교묘한 '꼼수'로 평가된 대통령의 3차 담화도 이들의 작품이라고.

그러나 이들의 꼼수에 촛불은 더욱 커져 12월 3일 5차 촛불집회에는 전국 100여 곳에서 232만명이 모여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국회도 이에 순응하며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다.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 그 유명한 '우주의 기운'으로도 대통령 탄핵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제2의 12.12는 완전히 분쇄되고 좌절됐다.

흐름은 이제 87년 6월의 상황에 들어섰다. 6.29란 더이상 군사적 반동이 힘들어진 전두환 등 군부세력이 '직선제'라는 개헌 조항을 가지고 6월항쟁을 중도에서 끊어 무력화시켜보겠다는 기획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는 물론 6월항쟁의 승리의 결과였다.

그러나 냉전보수 세력은 노회했다.

김 교수는 "민주화 요구에 굴복하는(즉 민의를 받드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야당의 분열을 유도한다면 대선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민주화 진영과 야권은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6월의 압도적 열기를 볼 때 대선에서의 승리는 이미 '따 놓은 당상'이라고 확신했다. 심지어 이후 야권이 DJ-YS로 분열된 상황에서도 어떻게 되든 이긴다는 '필승론'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12월에 치러진 대통령선거 결과는 노태우의 승리로 나타났다. 흔한 말로 '죽쒀서 개 준 꼴'이 된 것이다.

피눈물을 흘리며 좌절을 경험하고 학습한 대다수 국민들은 87년을 결코 반복할 수 없으며 다시는 반동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87년엔 6.29 이후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생각(착각)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점에서 2016년의 촛불 민의는 1987년의 민주항쟁보다 각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만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또 다시 (새로 경신된) 최대 규모의 촛불이 광장에 들이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촛불 민심이 헌재를 들어 엎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걸 잘 아는 헌재가 그런 만용을 부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지극히 낮아 보인다.

김 교수는 "이렇듯 거대하고 깊으며 동시에 높은 민의란 세계사적으로도 진실로 특이한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크고 높은 민의가 말하고 있는 것,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집약해 보면 'Year One'이라는 것이다. '원년, 새로운 시작'. 역사적 중요한 시기에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뜻으로 신기원을 열자는 말이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다음 정부의 할 일은 크고 높다. Year One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충심으로 이행하려는 모든 정치세력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과거 87년 DJ(김대중), YS(김영삼)를 훌쩍 넘어서는 비전과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만이 된다,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작은 생각을 버리고 큰 정치, 높은 정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연합정치, 협력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역사의 대세이고 합법칙이며 시대의 당위가 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김 교수는 "촛불민심을 온전히 끌어안기 위해 야3당은 당장 작은 일부터 공동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공동행동을 통해 하나씩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와 선거연령 18세 법안의 합의 처리는 좋은 출발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여야의 복잡한 동상이몽, 이합집산으로는 결코 (대선 전이든, 대선 후이든) 개헌을 위한 3분의 2의 합의에 이룰 수 없을 것"이라며 "촛불 민의의 입헌적 구현에 진정한 의지가 있는 후보라면 '시민의회 소집을 통한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야권에 요구했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은 촛불민심을 잘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87년 DJ와 YS가 6월항쟁의 성과를 노태우에게 갖다 바쳤듯이 이번에도 반기문 같은 보수세력에게 항쟁의 금자탑을 반납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놀랍도록 각성한 주권적 국민이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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